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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멀고 아름다운 동네의 기억 _ 원미동 사람들

by gershom 2012. 6. 10.

 

원미동 사람들 _ 양귀자 _살림

 

사근사근한 용진이와 조용하고 얌전한 선웅이와 함께 간다고, 아무 걱정 마시라고, 늠름하고 믿음직한 어투로 말씀드리며 살~살~ 눈치만 봤다. 진현이가 아쉬운 소리할 때 사근사근한 태도속에 그 때의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마지못한 허락이 떨어졌고 우리 세 명은 10대의 마지막 여름을 경포대에서 화끈하게 불태울 계획을 세웠다. 늘 그랬듯이 희망에 부풀어 상상하던 파란 바다와 하얀 백사장은 토사물과 쓰레기로 가득한 해변이라는 현실. 계획은 단지 계획일 뿐. 젊음을 화끈하게 불태우기엔 고딩 3마리는 너무 어리버리했었다. 어영부영 놀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내가 취직이 되어 있었다. 

 

경포대로 떠난 사이 담임선생은 집으로 전화해 아버지를 학교로 불렀다. '얘는 대학 못갑니다.' 아부지가 의자에 앉아서 숨도 고르시기 전 담임의 공격. '어차피 보낼 생각 없었습니다.' 담담한 아부지의 방어. 담임선생은 공세를 이어나갔고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다. '취직 자리가 하나 있습니다.' 학부형이란 포지션은 어차피 수세적인 입장일 수 밖에 없었다. '어딘데요?'

한달 후 나는 원미동 골목사이 빨간색 벽돌로 지어진 에스에이취 코리아에서 하루 12시간 컨베이어벨트 앞에 서있는 신세가 되었다. 아침 8시 30분 출근. 6시 퇴근. 중식 제공. 게다가 석식도 제공. 에브리데이 잔업. 월급 12만원. 월급봉투에 들어있던 쓸쓸한 자기앞수표 한 장과 사이좋은 만원짜리 두 장. 19살의 여름은 부천 원미동에서 끝이 났다. 이젠 서울보다 부천에서 산 기간이 더 오래된 지금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그곳에 남아있다. 갈 일도 없지만 어쩌다 근처를 지날일이 있어도 그냥 못본채 지나쳐 버리는 동네. 멀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동네 원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