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

20220623 ~

by gershom 2022. 8. 6.

"엄마, 많이 아파? 병원 가자." 
엄마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초인종이 울리자 아내는 나를 쳐다 봤고 나는 잠시 멈칫 망설이다가 
무거운 걸음으로 현관으로 가 문을 열었다.
"여기 침대가 못들어 올 것 같은데요. 들것으로 할께요"
구급차 대원들은 플라스틱 들것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로 가서 엄마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엄마가 헐떡이며 숨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틀만.. 있는다..."
엄마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힘든가 보다.
"알았어"

산소발생기의 공급량을 늘려도 산소포화도가 계속 내려가고 있었고, 
가래를 뱉어내지 못해서인지 기침이 계속 이어졌다.
지난 주에는 하루 종일 똥을 싸는 날도 있었다.  
몇 주일 째 음식을 먹지 못했는데 계속 똥이 나오는 게 이상했다.
손을 잡아 달라고 하는 요구가 심해져서 요양사는 엄마 손을 잡은 채 
밤 새 한 잠도 자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엄마~~ 엄마~~ 엄마~~" 
약해졌지만 엄마를 찾는 신음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요양사선생님이 며칠 전 하루 종일 똥이 나오는 걸 보고 그러시는데 
항문이 열린 게 아닐까 하시더라" 
아내의 말을 애써 무시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계속 커지고 있었다.
두 가지 생각이 머리 속에서 엉키고 있었다.
어차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내 소원대로, 엄마의 바람대로 
집에서 마지막을 함께 하는 것이 맞는것 아닐까. 
아니, 엄마가 아무리 병원을 싫어해도 저렇게 힘들어하는 상황이라면 
병원에 가서 뭔가 조치를 받는 것이 오히려 엄마에게 도움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상태로는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고 계속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를 요양병원으로 모시는 건 정말 내키지 않았고 어려운 일이었다.
형과 동생과 의논하여 예약했던 입원 날은 다가왔다. 
다행이라고 해야할 지 입원 날이 되자 엄마의 상태는 더 안좋아졌다. 
병원 얘기만 나와도 소리 지르며 거부 하던 엄마가 병원으로 가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아프고 견디기 힘들지 짐작에 마음이 아파왔다.
차가 많이 밀렸다. 비까지 내리는바람에  앰뷸런스보다 한참 늦게 병원에 도착했다. 
요양사가  병실로 올라가 있었고 동생도 도착해서 방호복을 입고 함께 올라가 있었다. 

병원 로비에 앉아 40분 정도 시간이 흘렀다.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엄마는 일반 병원에 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 
큰 소란 없이 입원 절차가 마무리 되었다.
요양병원 원장 방에서 엄마의 상태에 대한 설명을 하고 
앞으로의 조치나 계획을 듣는 중이었다. 
언제나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하고, 손을 붙잡던 등을 쓸어내려 주던 
계속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해야 하는, 
존재의 확인이 되어야 안심을 하는 증상, 집에 엄마 혼자 있을 때의 섬망 증상, 
끊임 없이 엄마를 부르며 신음하는 흐느낌, 
누군가를 계속 의심하는 습관, 엄마의 얘기만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모두 틀렸다고 단정하는 것, 
폭발하듯 화를 내는 성격, 끊임없이 주변에 계속 전화를 해서 
집으로 와달라고 하는 등의 얘기를 들은 원장이 입을 열었다.
'치매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난데 없는 뜻밖의 말에 형과 동생, 그리고 나는 말을 멈추고 원장을 쳐다 봤다.
'치매라기보다는 양극성 정동장애로 보면 이런 모든 행동들이 설명이 됩니다.'
처음에는 당황했다. 그 다음 멍해졌고 이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부천성모병원 정신의학과에서 이런 증상을 알고도 치료 하지 못했다면 
무능한 것일테고, 몰랐다고 해도 무능하다는 건 똑같은 것이겠지.
입원 당일날 요양병원 의사가 알아내는 것을 3년 넘게 진료해 온 의사가 모를리가 없었을 것이다.
'개새끼들...'  욕이 저절로 나왔다.
그걸 몰라서, 엄마가 정신적 질환이라는 걸 몰라서, 
우리는 엄마의 증세를 단순히 치매로 생각했고,
엄마의 행동이 이상해질수록 더욱 견디지 못하게 되었고,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면 엄마도 함께 소리를 지르고, 
안좋은 상황은 더욱 극단적인 상태로 악화되어 갔다. 
정신병적 증세가 점점 악화되면서 집안은 지옥이 되었다.
결국 엄마 혼자 방안에 유배되었다. 
3년 동안 똑같은 처방만 하던 부천성모병원 정신의학과 의사가 
우리에게 이런 식으로 한 마디만 해 주었다면. 
아니, 며칠이라도 더 빨리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생각도 디 부질 없는 후회고 변명일 뿐이다.
욕할 대상이나 내가 했던 행동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거리가 필요한거겠지.

'니는 와 나만 미워하노?'
최근에 엄마가 나를 볼때 마다 하는 말이었다.
엄마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물 흘리고, 귀에 대고 속삭이며 진정시키고, 
손잡아 주고, 맛있는 것 챙겨서 입에 떠 넣어주고, 병원가는 일은 늘 내 몫이었고, 
입원 시키고 퇴원 시키고, 왠만한 비용은 그냥 혼자 부담하고, 틀니 빼서 닦고 
잇솔질 시키고, 약 챙기고, 새벽까지 잠 못자고 방에서 달래주고,
 휴일에 어디 나갈 엄두도 못낸채 마루에 대기하고, 똥 기저귀 갈고, 오줌 기저귀 갈고.
그런 모든 일들은 엄마 기억에서 잊혀져버리고 소리지르거나 화만 내는 
못된 아들이 되고 말았다. 
병간호에 끝이 과연 있을까 무서웠다.
20년 전 아버지 병간호 할 땐 그래도 젊었었지.
엄마도 아버지처럼 혹시? 당연하게도, 예상했지만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과연 끝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감당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지? 
한 번 겪어 본 일이  이렇게 절망스럽고 더 힘들 줄 몰랐다.
생각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어떤 결론도 도달하지 못한 채 머리속에서 엉켰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온 밤. 진현이가 전화했다.
'아빠, 괜찮아요?' 
'응? 뭐가?'
'할머니 입원하셨잖아요'
'뭐.. 괜찮아 지겠지 점점..'
새벽에 엄마 부르는 소리에 자다 깼던 날들의 기억은 몸에 남아 있었다.
조그마한 소리가 나면 선잠에서 깨어 엄마 방으 가서 불을 켜보고, 
다시 누웠다가 혹시나 싶어서 다시 일어나고 그렇게 밤이 지나갔다.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0624  (0) 2023.07.03
20220624  (0) 2022.08.30
20190527 FB옮김  (0) 2021.03.01
20190518 FB옮김  (0) 2021.03.01
20190425 FB옮김  (0) 2021.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