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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20140306-FB옮김

by gershom 2019. 4. 3.

남덕현

어머니 돌아가시고 딱 십년 만에 네가 다시 아버지를 잃는구나.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별다른 뜻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개미 한 마리 기어 가는데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아장아장 개미를 짓이기고 엄마에게 걸어간다. 

누구의 잘못이고 누구의 뜻이란 말이냐. 

다만, 처연할 따름이고 그래서 내 마음이 처연하다.

아버지에 대한 사람들 이야기는 괘념치 말거라. 

죽은 사람 옆에 서 있는 산 생명들은 본시 다 사족 같은 것이다. 

하물며 말 일까.

사유가 별러지면 별러질수록, 타인에게 한 없이 너그러웠던 네 아버지의 덕이요 유산이라고 여기기 바란다. 

꽃이 피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매 번 질 수 있는지, 그 꽃에서 무슨 향기가 나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네 아버지는 그걸 알았다.

나는 그런 네 아버지가 참 좋았고 깊이 존경하며 따랐다.

그런 나를, 네 아버지는 당신이 평생 농사지어야 할 슬픔가운데 하나로 여겼다. 

그 뿐이고, 나머지는 도무지 쓸모없고 상관없는 일들이다

지극한 사람을 잃으면 깊고 치명적인 내상을 입는다. 

통증은 여기가 바닥이다 싶으면 언제나 한 층을 더 뚫고 내려가는 법이니, 

통증의 집요함과 지구력에 놀라지 말거라. 그저 그러려니 했으면 좋겠다. 

익숙해지면, 언젠가는 개 짖는 소리에 맞춰 신음소리를 내며 앓게 된다.

내 보기엔 그게 어른이다.

냉장고 묵은 음식은 다 버렸고, 구석구석 쓸고 닦았다. 쌀 새로 사다 놓았으니 그놈부터 헐어 먹어라. 

먹던 쌀은 눅눅해서 베란다에 신문지 깔고 펼쳐 놓았다. 혹시 쌀벌레가 기어 다닌다고 공연히 죽이지 말거라. 

때가 되면 쌀 밖으로 기어 나와 번데기 되고 나방 되어 날아간다. 

사람이 슬픔을 날려 보내는 이치도 크게 다르기야 하겠느냐.

볕 좋은 날, 베란다에 나가 쌀 고르는 슬픔은 참 좋다. 

시간이 훌쩍 갈게다.

당부가 있다면, 네 입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것, 네 몸에 입었다 벗어 놓는 것.

 네가 누웠다 일어나는 자리를 네 손으로 정갈하게 다루기 바란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나는 집을 깨끗이 쓸고 닦은 후 고요한 가운데 소박한 음식을 만들어 먹을 때 나의 존엄을 느낀다. 

인생, 그게 절반이고 그럴 수만 있다면 나머지 절반도 허물없이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네 방 책상위의 책 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네 생각은 네가 정리하기 바란다.

외삼촌이 미국으로 가자면 못이기는 척 가는 것이 좋겠다.

네 아버지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당부이기도 하다.

너에게 아무 약속도 못하고 떠난다. 

그러나 네가 어떤 의미로 나에게 들이 닥칠 때, 오래된 의미인 듯 여길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너를 의지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어쩔 수 없는 내 한 구석으로 여긴다.

별빛이 압정처럼 눈동자에 박히는 밤이다. 

아버지도 너를 압정처럼 아프게 눈동자에 박고 나서야 눈을 감았을 게다. 

그런 줄만 알고 살아라.

 

시인 남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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